이른 새벽의 잉여거림 미분류

1.
어제 근 2주일만에 운동을 갔다.
그리고 친척분을 만나뵙고 저녁을 얻어먹으며 술도 먹었다.
이 정도면 푹자야 정상이잖아?

그런데 왜 열두시에 잤는데 다섯시에 깨야 되냐고.

2.
어제 친척분과 저녁을 먹는데... 카운터를 보던 분께서 오더니
사촌동생의 민증을 검사했다. 참고로 사촌동생은 스물 둘이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동생의 민증을 검사했다. 내 동생은 올해 스물이다...

....

왜 안가고 나한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건데 ㅡ.ㅡ


뭐 이런게 절차상, 예의상의 일이기는 하지만...
요새는 이런 신분증 요구가 그렇게 반갑지는 않다.
뭐랄까. 실제로도 나이값을 못하고 있는데 외모도 나이값이 안된다는 소리잖아?
(그렇다고 더 나이든걸로 취급 받는건 싫다. ㅡ.ㅡ)

3.
<대비합시다. 그날의 공격을.>


부러우면 지는거다. 무너지면 지는거다.

잉여당당 소소한 일상

화요일-수요일로 넘어가며 밤을 샜던 나는 수요일 9시에 취침을 했다.
'밤을 샜으니 대략 12시간을 자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일어나니까 새벽 두시... 뭐 이런 제기랄 하면서 다시 잤는데...
일어나니까 새벽 네시... 아놔 시발 하면서 누웠는데....

잠이 안와.

여튼 그렇게 새벽 네시부터 앉아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좀 애매모호 했다.
어 시발 드디어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는건가 하면서 살짝 들뜨기도 했지.


그리고 어제 수면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우훗 여유있게 8시에는 일어날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어나니까 열두시야


역시 부족한 수면시간은 채우고야 마는 나의 잉여본능

[리뷰]죽음의 중지 소소한 일상

※자제력 없는 스포일러가 다량 내포되어 있으니 특히 NAMO는 보지 말 것.


워낙에 문화생활을 멀리하고 음주가락에만 몰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라
본 책의 작가께서 매우 거장이리신거 같으나 안타깝게도 이름을 들은적이 없고
그나마 아는 작품 '눈먼자들의 도시'는 영화제목으로만 알고 있는 터이다.
따라서 내가 이 양반의 작품세계가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미친 발상이며
이러한 점은 내가 이 책을 [리뷰]라고 쓰고 '뻘글'이라 읽어야 하는 형식으로 쓰기에
방해가 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뭐 하지만 작가의 작품세계가 항상 동일하다고 볼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대표적으로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주요섭님의
다른 단편 소설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는 사실이 좀 충격이었다.
물론 그분의 다른 작품들은 우리가 접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대략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처음은 말 그대로 '죽음의 중지'. 즉,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작가께서는 이 글을 '영생의 환상'에 빠져사는 분들께 드리고자 한거 같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스트럴드블럭'의 일화를 이미 읽었기에
작가가 초반에 펼쳐놓은 이야기가 그렇게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고 말하겠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달리 할말이 없다.

물론 작가께서는 정확하게 짚었다.
애초에 죽음을 전제로 구성된 이 사회의 법률, 종교, 도덕은 '죽음'이 중지되면
엄청한 혼란을 야기시기게 된다. 새로운 사회현상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집단도
생겨날 것이며, 동시에 그간 인간이 갖추고 있던 지적 체계도 그 혼란과 붕괴를
감수해야 하는 입장에 놓일 것이라는 것은 매우 자명한 일이라고 하겠다.


두번째 부분은 '죽음의 복귀와 예고'라고 할만한데 여기서 부터 'death'로 생각되는,
즉 '소문자 죽음'이 등장하여 첫부분에서 죽음이 중지된 이유를 설명하고 다시
인류에게 죽음을 돌려주게 된다. 단, 죽음은 그간의 무자비함을 회고하여
죽기 일주일 전에 죽을 사람에게 죽음을 통보하겠다고 하고는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사실 첫부분 보다는 이부분이 좀 흥미가 있었는데, 어쨌든 죽음을 알게되면 어떨까?
그것도 6개월 이런게 아니라 일주일이다. 일주일.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만약 여러분이 3일뒤에 죽게 되면 뭐를 할 건가요?'라고 물어보자
모두 주변사람들에게 친절히 하겠다,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하겠다... 등등...
자신의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정말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겠다고하자
선생이 웃는 얼굴로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라고 한거는 아니고 '여러분 그것을 지금 당장하세요, 망설이지 말고 롸잇 나우!'
그리고 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에 감명을 받고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라는 말을 남겼다라는 이야기가 있다.(후반부 믿으면 2^20byte)

어쨌든 각설하고 우리가 죽음을 미리 알게 되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솔까말 그게 좋은걸까? 죽음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레알 겸허히 받아드리겠는가?
확실한지 모르지만 시저는 브루투스 한테 칼침을 맞기 얼마 전에 누군가가
'가장 좋은 죽음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자 '급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뭐 시저가 그렇게 가기는 한거 같지만, 요지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우리가 쉽게 넘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님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소문자 죽음의 '과도한 친절'은 결국 소설 속의 사회를
혼란시킴과 동시에 그에게도 귀찮을 일을 늘리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은 그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뭐 일단 취지가 매우 좋았을 뿐 아니라, 죽음이 다른 일에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세번째 부분부터 펼쳐지는 '죽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잘 이해하지는 못했는데
여튼 골자는 이렇다. 죽음이 죽음을 예고했는데 죽음을 예고하는 편지가 계속 반송된다.
알고보니 이 양반은 이미 1년전에 죽었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죽기로 한 놈을 안 죽일수야 있나? 죽음은 이 양반을 어떻게든 죽이기로 하고
이 인간이 어떤 놈이길래 자신의 능력을 벗어났는지를 보려고 찾아가 봤더니
어라, 왠걸? 딱히 특별할 것 없는 50먹은 독신 첼로 연주자가 그 양반인게 아닌가?
여튼 죽음은 그양반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다가 마침내 그에게 직접
죽음을 예고하는 편지를 전달해주기로 해서 이야기가 쭉쭉쭉 진행된다.
(뭐 애초에 스포를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자세한 스포는 생략한다.)

<그냥 내가 봤을때는 맞는 것 같애.>

어쨌든 결국 죽음은 이 남자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으로서의 능력을 잃는다.
아마 여기서 죽음이 '여성'이라는 떡밥을 던져드리면 대락 '스콜피온 킹'이나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기타 고대 여성 주술사들의 능력 상실에 대한 지식과 연관이지어
어떤 과정으로 스토리가 진행이 되는지 개략적으로 짐작을 할 것으로 믿는다.

사실 뭐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왈가왈부 할 수는 없지만...
그저 내 결론은 포기하면 편해.'라는 거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소설에서 작가가 뭐라고 우리에게 말을 하건, 상관 없다.
어짜피 우리는 '죽음'을 피하지도, 무마시키지도 못한다.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가 소설속의 첼로연주자처럼 죽음을 피할 방법은 '없다'.

첼로연주자랑... 이 말이 딱히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죽음이라는 속성은 어떻게는 살려고 하는 인간과, 어떻게든 초연해지려는 인간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면서 쾌감을 느끼는 속성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용에 대한 저항과 반응, 반작용이 없다면 처음에는 점점 집요해지겠디만
결국 실증을 느끼고 그것을 포기해버리고 만다. 여기서는 그런 느낌인거 같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죽음의 심술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결국
죽음이 자신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끝이 나면서 처음의 시작처럼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라는 구절로 마무리를 해버린다.

처음 시작이 재앙과 혼란의 선포였다면 마지막 구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그건 니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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